Trimming Edge – 다모토리

어릴 적 마을 외곽의 조그만 폐차장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고물차의 핸들 을 돌리며 세계여행을 하는 꿈을 꾸었다. 그 조그맣고 폐쇄된 공간에서 체 득된 상상력은 나에게 있어 풍경이란 것들의 기본적인 원본이 되었다. 가 끔 지난한 내 삶의 통로 속에서 어릴 적 상상했던 낯선 풍경들을 마주 대 하게 되는데 그 길은 어릴 적 나에게로 돌아가는 회귀본능을 강렬하게 자 극시킨다. 양치기 산티아고가 그의 양들과 함께 삶의 가치를 깨닫기 위해 떠난 고단한 여정처럼 내가 만난 길들도 수많은 지표들을 감추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 본 풍경이 나를 짐짓 뒤돌아보게 만드는 잠시의 여유이기도 하다.

차가운 대지 그리고 정지한 듯한 묵음 속 풍경. 홀로인 내 앞에 펼쳐진 자 그마한 풍경이 나를 울린다. 기억 속에, 추억 속에, 사람 속에서 추워하며 울던 지난 시간을 조용히 침전시키는 대지를 바라본다. 그래, 혼자라는 것 이 이토록 좋았던 적이 있었던가….

독일 중부산지에 걸쳐 있는 헤르시니아 습곡 산지를 지난다. 1824년 시인 하이네가 쓴 《하르츠 기행》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고원 협곡지대다. 이 협곡을 지나면 괴테의 《파우스트》로 유명한 브론켄산(1,142m)과 빅토 르스회에산(582m)의 화강암 지대가 나타난다. 워낙 반듯하기로 유명한 독일의 길은 평탄하거나 굴곡진 곳, 그리고 심지어 바위투성이의 암반지 대까지도 끊어지지 않고 길게 이어져 있다.

힘든 길이 있다고 길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길의 외형이 바뀐 것 뿐이고 그 외형이 인간의 지각에 어떤 변형을 주는 것이지, 궁극적으로 우 리가 가는 길이란 하나도 일관된 것이 없다. 하지만 그 길 위에 선 인간들 은 길이 바뀔 때마다 어떤 판단을 해야 하고 그것이 정확한 길인지 조심스 레 타진한다. 그런 과정에서 길은 더욱 선명해지고 우리는 새로운 것을 깨 닫는다. 로드 무비가 흥미로운 이유다.

사람 사는 풍경은 저마다 다 그럴듯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것은 내가 전혀 알 수 없을 어떤 이들의 역사와 삶 그리고 신화와 동화 속의 낯선 풍 경들이다. 오늘도 사진 속 풍경은 말한다.

“풍경은 꽉 차 있지만 여전한 비움이다. 그것은 강요도 아니고 부딪침도 아니며 스스로 주인공이 되는 동화와도 같은 이야기다. 그럼으로 그 풍 경들은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사연의 한 조각이자, 숨 가쁘게 어디론 가 달려가는 여정이다.”

 

각인된 여행의 기억 – 유경희

 

사람마다 여행의 의미는 다르다. 의미가 다르다 해도 여행이 가지는

비일상적인 일탈은 새로운 활력 이기도 하고 혹은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바라 볼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내게 있어 여행이 갖는 의미는 색 다르다. 여행의 체험에서 난 많은 것을 얻었고, 또 이 세상을 살아갈 새로운 지혜를 얻었기 때문이다.

매우 개인적인 체험 이기는 하지만, 내게 각인된 여행의 기억을  잠시 소개해 볼까 한다.

여행1.

무더운 8월의 여름.

1980년대의 기억이다. 난생 처음 탄 비행기를 탔다.

여행지는 일본, 15살 소년의  첫번째 여행 이었고 또한 각인된 기억의 시작 이기도 하다.

15살 소년의 마음은 고동치고 있었다.  해외 여행이라는 설레임도 그러하지만 새로운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양감은 이내 상실감으로 변질 되었다.

누구보다 내 정체성에 자신감에 차 있던 소년에게 일본이라는 공간이 너무나 생경 스러웠다. 자유롭고 활기찬 형형색색의 도심이 오히려 혼란 스러웠다. 성적 표현의 관대함도 그러했지만 막 개장한 도쿄 디즈니랜드 그리고  쯔쿠바 세계박람회에서 느낀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이

혼란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그냥 사소한 감정에 불과 했다.  문화적 충격 이야말로 가장 큰 혼란 이었다.

쿄토 그리고 나라에서 본 전통 건축 양식은 제한된 경험 밖에 없었던 소년에게 너무나 불가사의 하고도 기묘한 충격이었다.

나의 모든 지식 체계가 부정 당 하는 듯 했다.열 아홉살을 맞이 할 때까지 그러한 혼란 했던 기억의 편린 만을 쫓아 해맨 시기 였다.

여행2

열아홉살을 어렵게 넘긴 나에게 젊음은 향휴 할수 있는 사치가 아닌 고통 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돌이켜 보면 한마디로 표현 할 수 있다.

이 세상이 오직 뿌연 매연으로 가득찬 회색 지대 이었다고..

그런 어떤 추웠던 1월

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낯선 환경이 마음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거라는 낙천적인 환상, 그리고 비일상적인 일탈이 필요 했는지도..

그래서 택한 곳이 일본 이었다.

15살 그 혼란스럽고 잔인했던 기억의 편린을 다시 한번 되 새겨 보고 싶은 충동, 그래서 난 15살의 기억을 더듬어 거슬러 올라갔다.

다소 어른 스러워진 내게 있어 일본은 어떤 얼굴로 다가 올까 라는 설레임, 무엇보다 그 혼란의 정체가 진실 이었는지 확인 하고 싶었다.

동경역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쿄토로..그렇지만 이 비일상적인 일탈은

더욱더 혼란스러운 기억만을 각인 시키고 끝을 맺는다.

쿄토에서 만난 반가사유상, 길을 헤맨 탓에 박물관 폐장 30분전에 겨우 입장. 숨을 고르기도 전에  박물관 한 가운데 홀로 놓여 있는 목조 불상과 마주 했다. 무지의 상태 에서의 조우, 그때의 팽팽한 긴장감은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까지도..

난 다시 한번 압도 당하고 말았다. 시공간을 초월한 어떤 절대적이고 아름다운 존재감, 나는 그때 무너져버린 감정의 변화가 실로 절대적 미에 대한 각성 이었다는 것을 훨씬 나중에서야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날 괴롭혔던 혼란의 정체가 어떤 건지 확실히 알수 없었다. 또 그렇게 두번째 여행은 선명하지 않은 막연한 감정만을 각인시킨 체  끝나 버렸다.

마지막 여행

채워지지 않는 갈증, 몽롱한 허탈감..난 인생 일대의 일탈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 버린체,  스물한살의 어느 가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각인된 기억들이 새겨진 일본이라는 공간이 나를 자유롭게 해 주리라는 어설픈 확신을 안은체..그 곳만이 무언가를 채워 주리라는 막연한 동경.

그렇게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그런 비 일상적인 일탈이 그리 오래 갈 리가 없었다. 늘 그렇듯이 더 큰 허무를 감내해야 했다. 일상에서의 도피는 결국 허무함 그리고 고통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지루함 이라는 고통을 느껴 본 사람은 알 터이다.그런 하루하루 속에서 난 어떤 소녀를 알게 되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나에게 한줄기 빛 이었다.어느날 그녀는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정말 하고 싶은게 있어요?” 라고..

그리고 천천히 자기 오빠 이야기를 이어 갔다.

“우리 오빠는 어릴적 부터 피아노 치는걸 좋아 했어요. 소질도 있었고 음대에 갈 정도로.. 그렇지만 그 꿈을 접고 의대에 진학 했어요” 라고..

“그러던 어느 햇살이 아름다웠던 5월 이었어요. 학교에 간다던  오빠는 그 날 이후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이야기의 결말을 재촉 하였다.  “그래서..어떻게 되었는데?”

그녀는 사랑스런 눈빛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무더웠던 8월..한 작은 카페 였어요. 오빠를 다시 만났어요. 어둡게 조명이 내린 홀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지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을..오빠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5월의 아름답고 눈부시던 그 햇살이 나를 여기에 이르게 했다고..”

긴 여운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난 그때 처음 느꼈다. 감동이라 부르기기가 경박할 지경의 긴 여운을..

난 여전히 그 어떤 혼란과 그리고 긴 여운을 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오늘도 여행을 떠난다.

우리 집, 거제 – 조석호

 

 

이 곳은

부모님께서 25년전에 도시 생활을 정리하시고 내려가신 곳이다.

바다 앞에 땅을 고르고, 도면을 그리고 여러 업종을 바꾸어가면서

자리를 지키고 계신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이방인이고

65살이 한참 넘어도 아버지는 여전히 청년회장이다.

 

사람들이 이 곳에 관해 묻기도 하지만

난 서울에서 휴가 때 잠시 들리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한다.

 

짧은 휴가때면 필름을 챙겨간다.

잠시 가서 담아온 것들이 모여

결국 쌓아놓으니

 

이 곳이 나의 흔적이 된다.